| 느루와 바투는...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꿈을 꾸며 살고 있습니다. 95년 구멍가게만한 잡지사에서 처음 만나, 벌써 12년의 세월을 함께해 왔네요. 어딘가로 매일 아침 출근하는 일을 그만둔 지 둘 다 오래여서, 보통의 부부들에 비해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누이처럼 닮았다는 얘기를 숱하게 들어온 우리는 이제 ‘오누이의 단계’를 넘어,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아는 ‘노부부의 경지’에 이르러 있습니다.^.^
시골살이를 먼저 제안한 건 느루입니다. 곧 시작될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술렁이던 2002년 새봄, 외출했다 돌아온 바투에게 “우리 시골 가서 살자”는 말을 느닷없이 꺼냈지요. 바투의 답은 곧바로 느루에게 돌아갔습니다. “그래. 그러지 뭐.” 지금도 기억합니다. 너무 쉬운 아내의 대답에 오히려 당황하던 느루의 얼굴을, 그리고 너무 빠른 자신의 대답에 스스로 놀라던 바투의 얼굴을... 말하자면 그날은, 여러 시골마을을 취재하면서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을 조금씩 키워오던 바투의 ‘무의식’이 느루의 제안에 의해 ‘의식 세계’로 이사를 한 날입니다.
아무려나, 그로부터 1년간의 준비 끝에 민통선이 멀지 않은 파주 적성면의 한 농가로 이사를 왔습니다. 뭘 언제 심을지 몰라 헤매는 우리부부를 위해 수돗가나 현관문 앞에 온갖 씨앗이며 모종을 놓고 가던 이웃들은 말 그대로 ‘산타클로스’였고, 철마다 저절로 자라나는 꽃들과 자고 나면 조금씩 자라있는 작물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과서’였지요. 사년 동안 아홉 번이나 되는 마을 초상을 함께 치르고, 온 마을사람들이 함께 하는 식사를 그보다 많이 준비하면서 ‘함께 노동하는 기쁨’을 배웠습니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다닌 노래방에서 ‘트로트의 참맛’을 알았고, 들일하다 마신 소주나 막걸리에서 (머리만 쓰다 마신) 도시의 술에서는 나지 않는 ‘진짜 향기’를 맡았습니다.
새로운 행복들을 연이어 알려준 파주를 떠나기로 한 건, 자신의 손으로 직접 ‘흙집’을 짓고 싶다는 느루의 꿈 때문이었습니다. 좀더 넓은 땅이 필요했고, 그러려니 좀더 산골로 가야했지요. 아무 연고 없이(우리 부부는 당최 이놈의 ‘연고’를 싫어합니다), 산 좋고 볕 좋고 물 좋다는 이유만으로 단양을 택했고, 운 좋게 마음에 쏙 드는 땅을 만났습니다. 단양군 대강면 덕촌리. (기를 쓰며 살지 말고) ‘대강’ 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건 같은 ‘면’ 이름도, 덕이 있는 사람들만 살 것 같은 ‘리’ 이름도 참 마음에 듭니다. 뿐인가요. 눈을 어디로 둬도 푸른 산을 피할 길이 없는, 5월이면 비탈밭마다 사과꽃이 흐드러지고 10월이면 다랑논마다 노란 벼들이 춤을 추는 이 마을을, 우리는 벌써부터 ‘감히’ 사랑합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흙집짓기 학교에서 일주일간 배운 것이 전부인) 흙집짓기는 우리부부를 또 얼마나 많은 고통과 행복의 길로 안내할까요. 우여곡절 끝에 완성할 그 집이, '비움채'란 이름값을 제대로 해낼 수 있긴 한 걸까요. 많이 겁납니다. 많이 설렙니다. |